강남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40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온 한 노인의 삶
10/04/2026 14:09
서울 강남구. 한국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이 밀집한 이곳에서 85세 이창월 씨의 삶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살아온 곳은 초고가 아파트 단지 바로 아래 자리한 구룡마을이다. 화려한 고층 아파트와 대조적으로, 이씨는 지난 40년 가까이 화장실조차 없는 허름한 집에서 버텨왔다.
서울시는 현재 구룡마을 철거 및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며, 이씨에게 330만 원 상당의 보상금을 제시하고 6월 중순 전까지 퇴거할 것을 요구했다.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3월 인터뷰에서
“여기를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라고 말했다.
구룡마을은 서울 강남 한복판,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 거주하는 지역 사이에 남겨진 28.7헥타르 규모의 무허가 정착지다. 이곳의 현실은 서울 안에 존재하는 극심한 경제적 격차와, 집 한 채 마련하기조차 어려운 서민들의 주거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집값, 특히 서울의 주택 가격이 임금 상승 속도를 훨씬 앞지르며 오르면서 많은 이들이 평생의 저축을 집 마련에 쏟아붓는다. 그중에서도 강남 아파트는 가장 비싸고 상승폭도 가파르다. 강남의 집 한 채는 곧 부와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며, 동시에 ‘가장 안전한 투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씨가 사는 구룡마을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그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낡은 차양과 엉킨 전선 아래를 몸을 굽혀 지나간다. 보행 보조기에 몸을 의지한 채 창문 하나 없는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마을 건너편에는 8차선 도로와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 단지가 반짝인다.
밤이 되면 아파트 단지에는 불빛이 환하게 켜지지만, 구룡마을은 어둠에 잠긴다. 임시 거처 몇 곳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과, 마을 교회에 걸린 붉은 네온 십자가만이 주변을 밝힌다. 쓰레기 소각과 연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도 여전히 마을을 뒤덮는다.
서울시는 2023년부터 이곳에 불법 거주 중인 1,107가구에 대해 이주를 요구해 왔다. 이 가운데는 40년 가까이 살아온 주민도 적지 않다. 이미 수백 명은 공공 지원을 받는 임시주택으로 옮겼으며, 시는 향후 이 지역에 새로 들어설 3,800가구 중 일부를 원주민에게 임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수백 명의 주민이 마을에 남아 있다. 이들은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는 현재 제시된 보상금으로는 재개발 이후 같은 지역에 들어설 주택의 임대료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서울시는 마을 곳곳에 퇴거를 촉구하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반면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망루를 세우고, 붉은색·검은색·노란색의 항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 주민은 “우리는 이곳에서 40년을 살았다. 그 사실을 인정해 달라”고 말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일부는 이들을 노른자위 땅을 점유한 채 개발을 가로막는 사람들로 본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이들을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 속에서 뒤처진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일구어 온 동네에서 최소한의 주거권을 인정받고자 애쓰는 이들로 본다.
구룡마을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도심의 빈민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한강 이북 도심의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개발되지 않은 외곽 지역이었던 이곳으로 밀려났다. 당시 개발업자들은 중장비와 전경, 심지어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해 강제 철거를 시도했고, 이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주민들도 있었다. 이후 정부는 강경책 대신 철거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구룡마을과 같은 변두리에 다시 임시 거처를 만들었다. 무단 점유자들은 재활용 자재를 활용해 집을 지었고, 이후 일부 투기 세력은 불법으로 조잡한 주택을 지어 다른 이들에게 되팔았다. 누군가 떠나면 다른 누군가 들어오는 식으로, 이곳에는 비공식적인 주거 시장이 형성됐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향후 재개발 시 보상 요구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주거지에 대해 공식적인 주택 등록을 허용하지 않았다.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구룡마을이 외부에 보이지 않도록 차단막까지 설치했다.
구룡마을의 역사를 연구해 온 임미리 연구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이 수십 년간 살아온 집을 정식 주택으로 등록할 수 있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래야만 재개발 후 신축 주택에 계속 거주할 권리와 금융권 대출 접근성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월 씨는
“우리가 수십 년 살아온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냐. 개나 돼지란 말이냐”라고 반문했다.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도 부족하다.
전기선과 수도관은 마을 입구까지만 들어와 있고, 각 가정은 여기서 다시 임시로 선을 끌어다 쓴다. 전선은 마을 곳곳에 뒤엉켜 있고, 비라도 오면 길은 금세 진흙탕으로 변한다.
91세 김영기 씨는 과거를 떠올리며
“예전에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친구가 자기 책상 위에 쓰레기를 올려놓으며 ‘너희 집은 쓰레기장에 산다’고 했다고 울면서 말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도시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구룡마을에는 한때 식료품점, 미용실, 철물점, 여러 교회, 그리고 주민자치조직까지 갖춰지며 1990년대에는 최대 1만 명이 거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민들은 식당 설거지, 막노동, 폐지 수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1994년 주민회의 기록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자”는 다짐도 남아 있다. 당시 마을을 찾아와 이주를 권유하던 공무원들이 주민들에게 분뇨 세례를 받았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현재의 구룡마을은 과거보다 훨씬 축소된 모습이다.
일부 집은 지붕이 무너졌고, 빈집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인근 언덕에서 날아온 까마귀들이 버려진 가구와 쓰레기 더미 사이를 오간다.
이창월 씨 같은 주민들을 위해 마을 곳곳에는 공용 재래식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집이 너무 좁아 내부에 화장실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벽면에는 채소 화분, 취사용 가스통, 연탄 더미가 기대어 있다.
지붕은 단열용 유리섬유와 비닐천으로 덮고, 헌 타이어로 고정해 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연성 자재 탓에 화재 위험도 크다. 실제로 지난 1월 발생한 화재로 마을 일부가 전소했고, 주민 180명이 대피해야 했다.
86세의 은퇴한 조산사 고재옥 씨는 그 화재로 집과 함께 평생 모은 재산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택시를 세 번밖에 타지 않을 정도로 절약하며 살았고, 모아 둔 돈 일부를 희귀 동전으로 바꿔 집 바닥 아래 숨겨두었지만 화재로 모두 사라졌다.
고씨는 울먹이며
“결국 아무 재산도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마을 내 이재민 공동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66세 백수현 씨 역시 불에 탄 집 근처 천막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서울시가 제안한 400만 원 상당의 보상금과 임대주택 이주 방안을 거부했다. 장기적으로는 생활비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백씨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사실상 몰아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구룡마을은 서울의 가장 부유한 지역 한가운데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빈곤의 흔적 중 하나다.
초고층 아파트와 판잣집, 투자의 상징과 생존의 현장이 불과 몇 걸음 거리에 공존하는 이곳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균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홍홍한(종합 / 뉴욕타임스, 재팬타임스 보도 바탕)







































































































